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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과 운동 발달

아기는 왜 자꾸 물건을 떨어뜨릴까?

1. 단순한 장난일까, 의도된 행동일까?

아기가 이유 없이 장난감, 수저, 컵 등을 바닥에 ‘툭툭’ 떨어뜨리는 모습을 본 부모들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특히 반복적으로 같은 행동을 할 때는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아 속이 상할 수 있죠.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단순한 장난이나 반항이

아니라, 아기의 뇌에서 인과관계를 탐색하고 세상을 배우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생후 6개월 전후부터 아기들은 ‘내가 한 행동’과

‘그에 따른 결과’를 연결짓는 학습을 시작합니다. 이때 떨어뜨리기 행동은 감각 자극, 운동 능력, 인지 발달이 동시에 작동하는

종합적인 학습 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기는 왜 자꾸 물건을 떨어뜨릴까?

 

2. 인과관계와 반복 실험 — 아기들의 과학적 본능

발달심리학에서는 이러한 반복 행동을 ‘실험적 놀이(exploratory play)’라고 정의합니다. 아기들은 물건을 떨어뜨리면서 다양한

결과를 관찰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컵이라도 떨어뜨리는 위치, 높이, 각도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고, 어떤 것은 깨지고, 어떤 것은

튕기거나 멈추는 등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아기들은 이 과정을 통해 ‘행동 → 결과’의 인과적 연결을 머릿속에 정립해 나갑니다.

생후 8~12개월 무렵에는 ‘사물 영속성(object permanence)’이 생기면서, 눈앞에서 떨어진 물건이 사라져도 존재한다는 개념을

이해하고, 그로 인해 떨어뜨린 후 물건을 찾거나, 그 반응을 기대하는 복잡한 인지 행동도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는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의 기초가 되며, 이후 언어와 수리 사고력 발달에도 영향을 줍니다.

 

3. 반복은 지루함이 아니라 학습의 일부

부모 입장에서 보면 같은 물건을 반복해서 떨어뜨리는 행동이 지루해 보일 수 있지만, 아기에게는 매번 ‘새로운 실험’입니다. 어른은 이미 익숙한 결과를 예측할 수 있지만, 아기는 매 순간을 새롭게 배우는 중입니다. 아기의 뇌는 수많은 신경회로가 형성되는 중이며, 이 시기의 반복은 뇌의 연결 구조를 강화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특히 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초기 발달은 주의집중, 인과 추론, 작업 기억과 관련이 있는데, 떨어뜨리기와 같은 반복 행위는 이 부위의 자극을 촉진합니다. 또한 손으로 물건을 쥐고 놓는 동작은

소근육 발달을 유도하며, 떨어뜨린 물건을 다시 주워보는 행동은 시-운동 조절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4. 부모의 대응과 자극 방향

아기의 행동을 단순히 ‘버릇’이라고 판단하여 제지하기보다는, 안전한 환경 안에서 충분히 탐색할 수 있도록 지켜봐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위험하거나 깨질 수 있는 물건은 미리 치워두고, 다양한 질감과 무게의 장난감을 제공하여 더 풍부한 자극을 줄 수

있습니다. 떨어뜨릴 때마다 “떨어졌네!”, “소리가 달라졌네?”와 같이 말로 반응해주면 아기의 언어 발달에도 도움이 됩니다.

부모가 이러한 반복을 이해하고 존중할 때, 아기의 인지 발달은 더욱 풍부해집니다. 결국 떨어뜨리기는 무심코 지나치는 행동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아기의 진지한 탐험이며, 이 과정을 따뜻하게 지켜보는 부모의 시선이 아기 발달의 든든한 기반이 됩니다.